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95834.html
조경태·주호영(5선), 홍문표(4선), 조해진·윤영석(3선), 김웅·김은혜(초선), 신상진(원외). 19일 현재까지 국민의 힘 당대표 출마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사람만 모두 8명. 20일 출마 선언 예정인 나경원 전 의원과 이준석 전 최고위원까지 포함하면 무려 10명입니다. 후보 등록 전 최고위원으로 ‘하향 지원’하거나 출마를 철회하지 않는 한, 이들 가운데 절반은 본선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컷오프’ 됩니다.
@당원투표 50%, 일반시민 여론조사 50%로 컷오프가 진행된다고 합니다. 이번 당대표 경선이 혼란 속에 이어지는 만큼 중요한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준석, 또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지지율 1위…TK에서도 1위
국민의 힘 지지층에서는 나경원 1위, 이준석 2위
국민의힘국민의 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총 10명의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0일 나왔다. 국민의 힘 핵심 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에서도 이 전 최고위원이 경쟁자인 나경원·주호영 전 원내대표를 앞질렀다.
https://biz.chosun.com/policy/politics/2021/05/20/UABXDJL63NHGHHIYB2N2LEJ3EU/
@ 젊은의원이 꽤나 엄청난 영향력을 보여주네요. 이런 메기의 등장은 흥행을 도울지도 모르겠습니다.
1985년 3월 31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한양대병원에서 태어났다. 이후 상계동 오성빌라에 거주하며 온곡초등학교에 재학했다. 본인 피셜로 오성빌라 반지하에서 거주하였다고 한다.
월촌중학교[11] 졸업, 서울과학고등학교를 조기졸업하고, 카이스트 수리과학과에 1~2달 남짓 다니다가 [12] 중퇴하였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교에 국비유학생(대통령 장학금)을 받고 진학하여 경제학과 컴퓨터과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복수전공). 하버드대의 금수저들은 방학만 되면 호화 여행을 떠나는데, 본인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컴퓨터 수리 알바를 했다고 한다. 2004년에는 당시 초선이었던 유승민 의원의 인턴을 했던 경험도 있다.
졸업 이후 산업기능요원으로 2007년 11월부터 2010년 9월까지 이노티브에서 근무하며 병역 의무를 마쳤다.
또한 지식경제부 주관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1기로 선발되어 활동하였다
@36세의 나이로 이슈가 된다는 것도 대단하네요. 등장부터 비범했던지라 꾸준한 행보가 눈에 띄는 정치인입니다.
나경원의 장점으로는 일단 압도적인 전국적인 인지도 및 주목도가 꼽힌다. 한나라당 대변인과 최고위원 그리고 2011년 서울시장 선거를 계기로 인지도가 높아졌고, 여성 유력인사 및 거물이 그나마 몇 명 있는 범여권(민주당, 진보 계열)에 비해서 [16] 보수진영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거의 유일한 유력 여성 거물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파층에서의 인기는 자유 한국당 원내대표를 역 임면서 더 높아졌다. 그리고 보수정당이 취약한 수도권에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인지도는 전국구 정치인이 분명하다. [17]
단점은 유명세만큼이나 비호감도가 그에 비례하여 매우 높다는 점이다. 좌파는 물론이고 우파 중에도 친박에서 나경원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찬성으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상당하다. [18][19]
장점이었던 보수 측의 가려운 부위를 긁어주는 시원한 발언들이 많다는 것은 달창 발언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나경원의 발언 수위들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수위를 높이다 보니 막말 논란도 많았다. 그로 인해 나경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높아진 것 있도 단점. 주어는 없다, 달창 발언 파문, 채이배 의원 감금 부정 등. 반면에 혜화역 시위 두둔 발언[20], 여성 의무 할당 30% 발언 등 여성들에게 공감을 살 만한 발언으로 반짝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런데 그 '장점'이라고 하는 보수층의 가려운 부위를 긁어주는 시원한 발언은 수위가 높다 보니 반대 정당의 입장에서는 불구대천으로 보일 수밖에 없으며, 정치인이 어느 정도 갖춰야 할 '불쌍하다'는 이미지[21]가 전혀 없기 때문에 위기에 몰리면 도와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게 된다는 큰 결함을 안게 된다. 이러한 정치행 보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생각이 없는 정치인'으로서 보일 수 있는데, 정말 대통령이 될 정치인은 발언이나 행동의 수위를 일정선 이상은 높이지 않거나, 그러한 언행에 동조하는 모습을 삼가기 때문이다. [22]
@인지도만큼은 어느 스타 부럽지 않은 정치인이죠. 그런 만큼 작은 행동도 크게 이슈가 된다는 점 공감합니다. 정치인이라면 정책과 신념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길 바랍니다.
1960년 1월 8일, 강원도 울진군 울진면(現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 토일 마을[7]에서울진고등학교 교사를 지낸 아버지 주구원(朱九源)[8]과 어머니 영양 남 씨 남순자(南順子)[9] 사이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중학교 때 대구로 이사하여 대구 경상중학교, 능인고등학교(34회), 영남대학교 법학과(78학번)를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과 같은 해인 1982년 22세의 나이에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군법무관으로 임관, 복무했으며, 전역 이후 2003년까지 판사로 일했다. 2003년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판사 재직 시절에는 주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재단법인 자금을 전용한 혐의로 당시 대구를 대표하는 현역의원을 구속하는 소신 판결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1999년 경북 영덕지원장 시절에는 교통사고로 두개골 골절의 중상을 입기도 했다. 출처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한나라당 원내부대표를 역임하였다. 2006년 노무현 정부가 사법개혁의 핵심사업으로 추진한 로스쿨 도입에 대해, 로스쿨을 통해 대학교육을 정상화한다는 노무현 정부의 주장은 국민 기만이며 국회에서 제대로 토론한 적도 없이 밀어붙이고 있다며 반대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이계로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다. 그 뒤로도 쭉 비박계에 속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같은 지역구에 유시민이 기존 지역구인 고양 덕양을 포기하고 대구 수성으로 내려와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 주호영이 친이, 비박계였기 때문에 당시 대통합민주당을 탈당하고 고향에서 출마한 유시민이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표차로 유시민을 꺾고 당선되었다.
@판사 출신이시군요. 입문기에는 멋진 모습을 많이 보여주시는 정치인 분들이 많은데 국민을 위해 더 큰 힘을 쓰셔주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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